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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유전자검사

2002-08-12 조회수 299

“건강검진을 받으면 ‘암 유전자’를 검사할 수 있나요?”



간혹 병원에 걸려오는 문의전화다. 유전자검사로 암 발병을 미리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뜻이다. 최근 바이오벤처 등이 유전자검사를 상품화하면서 기대치를 높여놓은 탓도 있다. 원자력병원 홍영준 임상병리2과장은 이를 두고 “시험을 안 거친 신약을 환자들에게 먹어보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삼성서울병원 유전암 클리닉의 김종원 교수는 유방암이 가계로 유전되는 가족을 눈 앞에 뻔히 보고도 손을 쓸 수 없었다. 유방암에 걸린 중년남성 환자에게서 유방암 유전자인 BRCA2 돌연변이를 확인했으나 환자의 형제와 그 2세들에게 유전자검사를 거부했다. 환자의 여자형제는 “시댁에 이 사실을 알릴 수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아무 것도 모르는 그의 딸이 원인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안타까워했다.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가

유전자검사에 대한 인식이 혼란스럽다. 인간 게놈 연구의 진전으로 질병을 ‘예측’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진 반면 병원에 적용되는 검사는 매우 제한적이다. 과연 질병 예측을 위한 유전자검사는 어디까지 실효성이 있는 것이고, 유전자검사를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누구일까.



유전자검사라면 먼저 개인을 식별하는 친자확인검사, 태아를 대상으로 한 산전(産前)검사, 신생아선별검사 등을 떠올린다. 광의의 유전자검사인 것은 맞지만 엄밀한 의미의 유전자검사와는 구별된다. 친자확인검사는 유전자 부분이 아닌 염기반복부분을 비교해 개인을 식별하는 것이고, ‘기형아 검사’로 불리는 산전검사는 주로 염색체 이상을 살펴 다운증후군 등을 보며, 신생아선별검사는 주로 단백질을 검사해 선천성 질환을 확인하는 검사이다.



엄밀한 의미의 유전자검사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확인함으로써 질병유무를 확인하는 것이다. 먼저 헌팅턴병, 루게릭병처럼 한 개 유전자의 이상으로 발병하는 단일유전자질환이 그 대상이다. 과거 헌팅턴병은 신경과적 증상으로 추정했지만 요즘은 원인 유전자를 검출해 확진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유한욱 교수는 “7,000종의 단일유전자질환 중 1,500종의 원인유전자가 밝혀졌고, 국내에서 50종 정도가 진단된다”고 말했다.



두번째로 B, C형 간염, 에이즈 등 감염성 질환이 10년 전부터 유전자검사로 진단된다. 인간의 유전자보다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먼저 연구된 덕분이다.



셋째로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것이 발병을 예측하는 수단으로서의 유전자검사다. 암, 심혈관질환, 당뇨, 뇌졸중, 치매 등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다인자성질환이 그 대상이다. 말 그대로 유전자 돌연변이가 병과 관련이 있지만 원인이 복잡해 1, 2개 유전자검사만으로 예측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유전성 암 검사가 가장 유용

그나마 유전자검사가 실효를 갖는 것은 암 중에서도 유전성이 뚜렷한 유형에 대한 검사다. 앞서 언급된 BRCA1, BRCA2라는 유전자는 유방암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로 밝혀졌다. 미국에서 이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을 경우 65세까지 80%가 유방암을 앓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고 예방 차원의 절제수술을 받는 이들이 늘고있다. 즉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많다면 이러한 원인 유전자를 대대로 잇고 있는 가계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유방암과 난소암, 대장암 등 유전성 암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까지 뚜렷이 밝혀져 있다.



유전성 암의 원인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생활습관을 바꿈으로써 발병위험도를 낮출 수 있다. 9월 원자력병원 내 암전문검진센터 개관과 함께 암유전 상담클리닉을 운영할 홍영준 과장은 “보통 3대를 기준으로 한 가족 중 2가지 이상의 일차암을 앓은 사람이 있거나, 부모 자식이 같은 암을 앓은 경우, 젊은 나이에 암이 발병한 경우는 유전성 암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검사의 한계

그러나 유전성 암은 전체 암의 5~10%에 불과하다. 90% 이상은 여러 유전적 변이와 생활습관이 함께 작용해 발병하고, 증상이 나타날 정도면 꽤 진전된 후다. 심혈관질환, 당뇨 등 다른 질환을 예측할만한 유전자검사는 더 드문 수준이다. 유전자검사를 이용한 질병 예측이 요원하다는 이야기는 이래서 나온다.



게다가 원인유전자는 외국에서 규명한 것이라 민족, 가계마다 다를 수 있는 유전자 변이유형과 발병빈도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원자력병원 홍영준 과장은 “한국인에서 발견될 확률이 0에 가까운 유전자 변이를 찾겠다고 비싼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게 아닌지 철렁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변이 유전자 발견 이후가 더 문제일 수 있다. 단일유전질환의 진단과 달리 유방암 변이유전자를 가졌다고 지금(또는 언젠가 반드시) 유방암을 앓는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유한욱 교수는 “예측유전자검사는 가능성을 다루는 것이지 확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때문에 전문 상담사가 ‘발병가능성 몇%’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할 줄 알아야 하고 인생설계를 조언할 필요가 있다. 삼성서울병원 김종원 교수는 “미혼 여성에겐 유방 보존의 가치가 크겠지만 출산을 마친 중년 여성이라면 암의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선 예방적 절제술이 아직 없는데 숱하게 행해지는 미용목적의 유방수술보다 더 많은 고려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1, 2년 전부터 미국에선 유전학 전문의가 제도화하면서 2,000여명의 유전 상담가들이 전문적으로 나섰다.



치료법이 없는 유전질환의 문제도 있다. 34세에 알츠하이머가 발병한 한 환자는 자신이 원인 유전자 PS1의 보유자임을 알게 된 후 어린 자녀를 포함해 가족 13명이 유전자검사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이들은 검사결과를 통보 받지 않았다. 혹시 보유사실을 안다고 해도 예방법이 따로 없는 데다가 자칫 삶을 포기할 우려까지 있기 때문이다.





■ “DNA 칩 임상적용은 힘들어”



검사 때마다 결과 달라

그렇다면 아직 적용할 수 없는 유전자검사는 무엇일까. 한국인의 많은 암을 진단할 수 있다며 바이오벤처들이 내놓은 DNA칩은 사실 병원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자궁경부암을 진단하는 칩 1, 2개정도만 일부 쓰인다. 관련 전문의들은 대부분 “개발된 DNA칩으로 검사를 해보면 검사할 때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등 신뢰도가 떨어져 임상적용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원인 유전자를 모른 채 단순히 변이부분을 비교해 “발병 또는 악화할 가능성이 몇 배 높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연구결과도 임상 적용과는 거리가 멀다. 연구대상으로 선택된 유전자 변이 부분만 보면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유전자의 다른 부분을 비교하면 일관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전문의는 “이런 식으로 종합분석 없이 단편적으로 얻어지는 연구결과는 강북-강남 주민의 발병가능성이 몇 배 차이라는 의미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DNA칩에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려 주요 난치병과 만성질환의 발병가능성을 예측하려는 시도는 게놈 연구자들의 궁극적 꿈인 것은 사실이나 아직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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